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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연습

두려운 글쓰기, 다시 시작해보기

엉망진창이긴 했어도 대학생 때 단편 영화 시나리오도 몇 편 써 보고, 2,30대에는 단편 소설도 썼습니다. 어쩐지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한 동안 글을 안 쓰다가 '짧은 소설이라도 뭔가 써보고 싶은데'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곤 했죠. 근래에도 그랬습니다. 작년 12월쯤부터 글쓰기 관련한 책도 다시 사고 강의도 듣고, 이전에 함께 소설 쓰기 들었던 지인분께 추천해 줄 강의가 있는지 물어도 봤습니다.

하지만 몇 개월을 흐지부지 글을 썼다 지웠다 강의를 들었다 안 들었다 반복하다보니, 어느 날 노트북 모니터의 쓰고 있던 글을 들여다보는데 도무지 뭘 써야 할지, 왜 내가 이걸 쓰고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그냥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창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마음 속에 어둠이 와버린 건 지, 바로 바닥에 드러누워 제 반려견 '밀리'의 발만 만지작만지작 거렸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개

위안을 받고 싶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해봅니다. 이런 사정을 말하자 여자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럼 하지마. 나중에 하고 싶을 때 그때 하면 되지 뭐.

전화를 끊고 나니 속이 좀 풀렸습니다. 뭐, 딱히 변한 건 없지만.

밀리가 산책하자고 몇 번이나 저에게 와서 핥고 꼬리를 흔들었지만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일어나서 나가야지 싶었어요. 그렇게 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든 생각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였습니다.

난 아는 게 없다

한 동안은 내가 글을 못 쓰는 것에 대해 '뭔가 소설을 쓰는 양식을 내가 모르는 거 같아'라는 생각을 해서 그 쪽으로 자료를 찾고 공부했습니다.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사건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플롯이 무엇인지 등등. 그리고 그런 공부한 걸 바탕으로 글을 쓰려고 하면 또 막막했죠.

밀리를 산책시키며 뭐가 문제일 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난 아는 것이 없다'였습니다. 아는 게 없는데 아는 게 있는 듯이 글을 쓰려고 하니 막막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요즘 바둑을 취미로 두고 있는데요, 바둑에 비유하자면 아직 돌만 놓을 줄 아는 놈이 이세돌처럼 두려고 하니 누구와 붙어도 돌을 놓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바둑 초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일단 바둑판을 마주하는 게 편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도 둬보고 저렇게도 둬보면서 패배하고 복기하고 잘 모르겠는 건 찾아보고, 조금씩 내공을 쌓아가다 보면 부담이 적은 9*9 미니바둑만 하던 내가 어느새 19*19 정식 바둑에 손을 대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게 되죠.

아직은 패배가 많지만..!

걍 써보자

이제 공부할 방향을 정했으니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대체로 많은 글쓰기 책들은 소설을 쓰는 '기술'을 알려주죠. 하지만 이런 책은 집에 몇 권 있고 이게 지금의 저한테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걍 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인터넷서점에서 책들을 뒤적여서 제 의도에 부합할 것 같은 책을 두 권 찾았습니다. 책 이름은 '10대를 위한 나의 첫 소설 쓰기 수업'과 '라이팅 픽션: 당신이 사랑한 작가들은 모두 이 책으로 소설 쓰기를 배웠다'입니다. 두 번째 책 '라이팅 픽션'은 번역가 분이 제가 처음으로 들은 소설 쓰기 수업의 선생님이신 문지혁 작가님이시더군요. 조금 놀랐습니다. 이렇게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는데 책으로 또 뵙게 될 줄이야.

두 권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저에게 '걍 쓴다'를 해나가야 할 실천적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다고 느껴서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이 책들을 통해서 쓴 글들과 변화 과정을 부끄럽지만 글로 공유해 나가려고 합니다. 아마 별로 궁금할 내용은 아니실 것 같지만 나처럼 엉망진창 글 쓰는 사람도 있군 하는 위안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며 함께 글쓰기 과정을 즐겨보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