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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연습

해피엔딩, 새드엔딩 그것이 문제로다(1)

나의 첫 소설 쓰기 수업 책 표지

아래 내용은 '10대를 위한 나의 첫 소설 쓰기 수업' 책 내용 중 5장 '해피엔딩, 새드엔딩 그것이 문제로다'에서 해야하는 글쓰기 내용입니다.

혹시나 저처럼 이 책을 이용해 글쓰기를 배워나가는 과정인 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글을 남깁니다.

생동감을 위해 맞춤법은 따로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


쓰다 보니 소설 한 편

정현은 그 남자가 가는 곳마다 쫓아 다녔다. 남자는 카메라로 흑산 등산로 구석구석에 그녀가 만들어둔 길고양이 집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었다. 정현은 그 남자가 공무원일까 생각해봤지만 묶은 머리와 개 한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것 봐서는 그건 아닌 듯 했다.

정현은 흑산에 총 8개의 고양이 집을 만들어 뒀다. 등산로 입구에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간 곳에 최초의 1개로 시작해서 30분이면 올라가는 정상 아래까지 주 등산로와 샛길들에 설치했다. 정현이 고양이집을 점검하고 부족한 물과 밥을 채운 뒤 내려가다가 남자를 마주쳤다. 주 등산로를 따라 15분 정도 올라오면 발견할 수 있는 고양이집 앞에서 였다.

남자는 정현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렌즈가 향한 곳에는 고양이집에 몸을 반쯤 집어 넣은 채 잘린 꼬리를 내밀고 있는 호랭의 엉덩이가 있었다. 정현은 쓰고 있던 모자 창 너머로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남자의 하관을 봤다. 그녀는 고개를 더 들면 눈이 마주칠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남자의 뒤편으로 걸어 가서 호랭과 그를 바라봤다.

정현은 아침에 자신이 살고 있는 부산 영수구 캣맘 카페 회원 '애옹냥냥'이 남긴 '저도 설치해둔 고양이집이 사라졌어요'라는 제목의 글을 봤다. 최근 3개월 동안 설치해둔 길고양이 집이 사라졌다는 글이 4개가 올라 왔다. 그 게시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말하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컴퓨터에서 삭제 키를 누른 것 마냥 티끌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보통 공무원들이 민원을 받고 처리하면 주변에 조그마한 파편이라도 남기 마련인데 마치 그 곳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풀까지 자라 있었다고 했다. 정현은 몇 주 전에 같은 일을 겪은 다른 캣맘 회원이 쓴 '돌아오지 않는 냥이들'이란 글을 클릭했다. 글을 남긴 캣맘은 고양이 집을 다시 설치하고 며칠이 흘렀지만 고양이들은 한번에 증발이라도 한 듯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슬퍼했다.

남자가 누른 셔터 소리에 호랭이 집 밖으로 고개를 빼서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남자의 개를 주시하면서 등과 꼬리를 세우고 신경질적인 쇳소리를 냈다. 검고 늑대처럼 생긴 개는 남자 옆에 앉아서 호랭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오"하고 소리를 내고는 마치 그 산에 깊게 뿌리 내린 나무처럼 서서 박수를 쳤다. 바람이 불자 숲에는 풀들이 서로 맞닿는 소리로 가득했고 남자의 박수 소리는 그 소리에 뒤섞여 하나가 됐다.

평일 오후 4시에 흙이 묻은 늘어진 회색 목티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짝짝이 운동화를 구겨 신은 채 고양이를 보고 박수를 치고 있는 남자. 정현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팔짱을 꼈다.

"저기요."

남자가 정현을 돌아 봤다.

"뭐하시는 지 여쭤봐도 될까요?"

남자는 미소지었다.

"고양이를 보고 있습니다."

"혹시 고양이집 철거하시고 뭐 그런 건 아니죠?"

"고양이집은 오늘 없어집니다."

"없어진다고요? 왜요?"

"없어지니까요."

"왜 없애는데요?"

"글쎄요."

정현의 뺨으로 마른 나뭇잎 한장이 스쳐 지나갔다. 정현은 뺨을 비볐다.

"아저씨가 없애는 거 아니예요?"

"아닙니다."

"그런데 왜 없어진다고 하세요?"

"없어지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왜 없어지냐구요."

"글쎄요."

"아저씨가 신고했어요?"

"아닙니다."

"아닌데 어떻게 없어지는 걸 아세요? 이상한 아저씨네."

남자는 정현을 보며 "오"하면서 계속 박수를 쳤다.

"고양이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집도 없이 추운 산 속에서 어떻게 지내요!"

정현은 그가 "오"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바닥을 부딪혔다가 떼는 걸 보고 있는데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 빼곡히 둘러싼 나무들에 달린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박수 좀 그만 쳐요, 미쳤나봐." 하고 정현은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아저씨가 다른 데도 신고해서 고양이집 다 없앴죠? 맞죠?"

"오"

"하아, 저기요! 어떻게 고양이집이 없어지는 걸 알았냐구요. 그 카메라로 사진 찍어서 구청에다가 보내는 거 아니예요? 맞죠?"

정현이 계속 다가서며 말하는데 개가 일어나서 그녀 쪽으로 한 걸음 나와 둘 사이를 가로 막았다. 개는 정현을 응시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정현은 발걸음을 멈췄다.

"이 개 사람 물어요?"

"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입마개랑 목줄도 안하고 산책 시켜요?"

남자는 개를 한 번 쳐다보고는 정현을 바라본 채 눈을 껌뻑거렸다.

"사람 문다면서요. 요즘 개물림 사고가 얼마나 많이 생기는 지 뉴스도 안 봐요?"

"개가 사람을 무는 게 잘못 된 건가요?"

"당연히 잘못 됐죠. 아저씨가 개한테 물린다고 생각해봐요."

"아프겠습니다."

"아저씨는 아프면서 다른 사람 아프게 하는 건 돼요?"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저씨가 막을 순 있잖아요."

"왜 막아야 합니까?"

"뭐라고요?"

정현이 한 발자국 다가가려하자 개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아저씨! 지금 이 개가 저 물려고 하잖아요."

"맞습니다."

"하아 완전 미친놈이네. 그럼 막아야지 지금 뭐하는 건데!"

"왜 그래야 합니까?"

"아저씨 개잖아!"

"이 개는 제 개가 아닙니다."

"아저씨 옆에 붙어 있고 심지어 지키려고 하는데 아저씨 개가 아니라구요?"

"네."

정현은 한숨을 쉬었다.

"완전 미친 놈이네. 지금 경찰에 신고할거니까 그대로 있어요."

정현이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댔다. 한참을 기다려도 연결음이 나오지 않아 휴대폰 화면을 봤더니 '서비스 불가 지역'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손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몇 걸음 내려가자 비로소 신호가 떴다. 전화 연결음이 들렸다.

그녀가 남자가 있는 곳을 돌아봤을 땐 아무도 없었다. 정현은 남자가 있던 곳에 올라갔다.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끊기며 들렸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호랭도 없었다.

숲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지만 정현은 그 곳을 떠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