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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독후감

30대 중반의 무직인데도요?, 책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괜찮지 않으니까 '괜찮다'는 위로의 말이 필요하지, 괜찮다면 위로의 말이 뭐가 필요하겠어요?

- 법륜,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중  -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책 표지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책 표지

종교 책 아니다

얼마 전 연말을 맞아 일본에서 1년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동생과 만났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오랜만에 보는 거라 선물을 주고 싶어서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를 건넸습니다. 법륜 스님께서 표지에 승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계셔서 동생이 혹시나 종교 책이라고 선입견을 품을까 봐 제가 말했습니다.
"이거 종교 책 아니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이나 불법 같은 각 종교의 철학은 누군가 이야기해주면 귀 기울여 듣습니다. 재밌고 유익해서입니다.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알라신이든 간에 신에게 빌었더니 갑자기 기적처럼 일이 풀리더라 라는 이야기보단 그런 철학적 관점에서의 교리를 이야기해준다면 혹해서 종교를 하나 가져볼까 싶을 텐데 말이죠. 아쉽게도 제게는 종교가 영등포역 앞에서 마주치는 도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이 책은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청중이 질문하고 법륜 스님이 그에 대해서 불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답을 주는 게 아닙니다- 강연) 중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내용을 편집하고 간추려 뒀습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러다가 결국 불교 믿으라고 하시는 거 아냐?'하는 의심을 풀었던 스님의 한 마디를 전해드리면서 독후감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멘."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펼쳐요

  • 36살에 직장도 없는데 행복할 수 있는 걸까?
  • 일요일 밤, 너무 우울해
  • 퇴사하고 싶다

책 정보

쪽수 발행일 저자
336쪽 2020년 12월 20일 법륜

독후감

거의 10년이 넘도록 도전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가 뚜렷할 때는 새벽 4시 반에도 일어나서 일을 보지만-직장이 있거나 맡은 일이 있을 때입니다- 스스로 '일찍 일어나서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해야지'할 때는 거의 90%는 실패합니다. 기본적으로 알람이 울리고 1시간은 지나고 일어나죠. 1시간 동안 알람이 울리면 계속 끕니다.
"또 늦잠 잤네. 진짜 정신 좀 차려라 모지리야" 하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할 때면 자책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럼 일어날 때도 비에 쫄딱 젖은 것 같은 기분이었죠.
손을 더듬어 폰을 집어 들고 인스타그램을 켰습니다. 피드를 스와이프 하며 술술 내려보면 모두 참 잘살고 있습니다. 누구는 유럽 여행 중이었고, 누구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누구는 친구들과 파티를 했습니다. 저는 눅눅한 이불 안 공기를 내보내려 괜히 몸을 들썩거려 봅니다.
"다들 저렇게 부지런히 사는데 나는 일어나는 것 하나 제대로 못 하고 뭐하냐."
이런 삶의 태도가 종일 함께하다 보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밤이 되면 쭈글쭈글해진 채로 침대에 누워 생각하죠.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야지."
하지만 잠은 오질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킵니다.

여러분의 상상이 현실에 있는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다 괜찮은 사람들인데, 정작 본인들은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상상의 나', 즉 가아假我를 버리세요. 그건 자기 자신이 아니고, 머릿속에 그려진 하나의 환상일 뿐이니까요.

- 208쪽 중,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

위에는 과거의 저입니다. 꽤 오랫동안 저런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저런 태도의 저변에는 이런 생각이 깔렸었습니다.
'내 찌질한 모습을 고쳐야 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야 해.'
하지만 지금은 그냥 그 찌질이가 저란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찌질이'가 아니라는 것도 이젠 알고요. 그냥 '나'일 뿐이죠. 늦게라도 일어나자마자 누군가의 피드에 좋아요를 눌러주며 상대방에게 좋은 기분을 전해주는 부지런함도 갖추고 있는 '나'.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어요. 큰 것도 작은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고, 신성한 것도 부정한 것도 없어요.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이를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공空'이라고 해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라는 뜻이에요.

- 194쪽 중,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

'이거 스스로를 너무 합리화하는 것 아닌가?'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합리화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SNS가 시간 낭비다' 라는 건 SNS에 쏟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낫다는 관점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반면에 SNS로 소통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피드를 보는 시간이 즐겁죠. 같은 행위지만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같은 행위더라도 다른 결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SNS를 한다'는 행위 자체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고 그냥 행위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에 따라 돌아오는 결과를 책임만 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에서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걸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인생은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적인 조건에서 다섯 가지는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 남을 죽이거나 때려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마음껏 살 권리는 있지만 남을 해칠 권리는 없습니다. 둘째,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으면 안 됩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남에게 손해 끼칠 권리는 없습니다. 셋째,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안 됩니다.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는 있지만,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넷째, 욕설이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말할 권리는 있지만 상대에게 말로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다섯째, 술을 먹고 취해서 행패를 피워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든 먹을 권리는 있지만 술 마시고 취해서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 240쪽 중,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

저는 안경을 쓰고 외출하는 걸 꺼렸습니다. 공익을 갈 정도로 시력이 나쁜지라 안경을 끼면 눈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주변 사람들이 우스꽝스럽고 만만하게 바라볼까 봐 싫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안경 쓴 모습을 제일 우습고 만만하게 바라본 건 저였단 걸 알았습니다.
지금은 자주 안경을 쓰고 외출합니다. 누군가 안경 쓴 모습을 보고 놀라면 안경을 손에 들고 멀리 뻗어서 눈이 콩알만 해지는 웃긴 모습도 덤으로 보여줍니다. 그럼 상대방도 한 번 해보기도 하며 같이 웃습니다. 이제는 '나'라는 존재가 안경 하나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고, 바뀐다 해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참자유는 어디에 있어도 자유롭고, 다른 사람하고도 자유롭고, 혼자 살아도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환경을 옮겨 다니기보다는 현재의 위치에서 자유를 먼저 얻어야 합니다.

- 303쪽 중,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

태어나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베인 손가락이 아물고 손을 씻는 순간처럼 이 책이 여러분의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